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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앞서가는 쪽서 주기도 하고 따라가는 쪽서 받기도 하는 겁니다

기술은 앞서가는 쪽서 주기도 하고 따라가는 쪽서 받기도 하는 겁니다

Posted 2011-04-22 03:18,   

Updated 197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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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2시 반.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지하1층에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었다.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등 10여 명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이에 앞서 이날 오전 10시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첫 출근했다. 지난해 12월 1일 여기서 열린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시상식에 참석하긴 했지만 42층 회장 집무실에서 업무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2008년 삼성그룹이 서초사옥에 둥지를 틀기 전 14년 동안의 태평로사옥 시절에도 이 회장은 회사로 출근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용산구 한남동 자택이나 집무실 겸 외빈 접견실인 승지원에서 일했다. 그의 출근은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다시 서초사옥 지하1층. 기자는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마주친 이 회장에게 다가가 오랜만에 나오셨네요. 앞으로 자주 출근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그럼요. 내(가 회장인) 회사인데 그래야죠라며 밝게 웃었다. 내 회사라고 말하는 그의 발음이 또박또박했다. 이때 경호진이 기자를 제지하려 했다. 그러자 이 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기자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함께 걷자고 했다.

이 회장은 올해 초 삼성그룹 신년하례식에서 (경영을) 잘해보자고 말한 뒤 수많은 임원 중 유독 한 여성 임원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한 적이 있다. 이 회장이 평소 여성인력을 존중하고 우대한다고 전해들은 말들이 순간 머릿속을 스쳤다. 그렇게 최근 문을 연 삼성전자 디지털체험 매장 딜라이트숍까지 20여 m를 이 회장과 함께 걸었다.

애플이 며칠 전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소송을 걸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이 회장은 기술은 앞서가는 쪽에서 주기도 하고, 따라가는 쪽에서 받기도 하는 겁니다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럼 지금 삼성은 위기인가요?라고 묻자 그는 돌연 발걸음을 멈추고 기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반문했다. 위기라고요? 이때 이 회장 바로 곁에 있던 이재용 사장이 거들었다. 아, 회장님이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늘 강조하시니 기자분이 질문하신 것 같습니다. 그제야 이 회장은 아, (위기는) 아닙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답했다.

딜라이트숍을 찾기 전 이 회장은 삼성 미래전략실 팀장들과 점심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인용 미래전략실 부사장은 자유롭게 업무를 보고하는 자리였고, 이 회장은 주로 들었다고 전했다. 식사를 마친 이 회장은 서초사옥 1층 어린이집과 지하 딜라이트숍을 둘러봤다.

이 회장은 동아일보 기자와 헤어진 뒤 수십 명의 기자들이 대기하던 삼성전자 로비의 포토라인 앞에 섰다. 그는 서초사옥을 처음 제대로 둘러본 소감으로 빌딩이 참 좋다고 했다. 이날 업무보고에서 인상적인 것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회장이 인상 깊은 얘기만 들으면 안 된다. 비슷한 얘기를 자주 반복해서 듣는 게 윗사람의 할일이라고 말했다.

애플 소송 건에 대해서는 애플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우리와 관계없는, 전자회사가 아닌 회사까지도 삼성에 대한 견제가 커지고 있다. 못이 나오면 때리려는 원리겠지라고 말했다. 못이 나오면 때린다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의 일본식 표현이다.

지난달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활동을 위해 영국 런던 출장을 나설 때 연분홍색 재킷을 입었던 이 회장은 이날 연한 비둘기색 재킷을 입었다. 갈수록 화사한 옷차림을 즐기는 이 회장은 기자들 앞에서 환한 표정으로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앞으로 자주 출근할 계획이냐는 한 여기자의 질문에 가끔요. 기자님 얼굴 보고 싶으면 와야죠라고 답했고, 왜 오늘 출근하셨느냐는 동아일보 기자의 질문에는 오늘 별로 할 일이 없었거든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 회장은 오후 2시 57분 마이바흐 승용차에 올라탔다. 5시간 동안의 삼성 서초사옥 첫 출근을 마무리하는 퇴근길이었다.



김선미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