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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서 주춤하던 VR, 교육-훈련용으로 ‘존재감’

게임서 주춤하던 VR, 교육-훈련용으로 ‘존재감’

Posted February. 07, 2018 08:48,   

Updated February. 07, 201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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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차의 속력을 올릴 때 쓰는 레버와 각종 버튼이 눈앞에 나타났다. 창 밖으로는 63빌딩 등 낯익은 건물들 사이로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보였다. 들고 있는 조이스틱을 밀어보니 화면 속 레버가 올라가며 의자에서 열차가 움직일 때 느껴지는 진동이 전달됐다. 열차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그에 맞는 쏠림도 느낄 수 있었다. 창 밖으로는 서울의 풍경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열차를 멈추고 머리에 쓰고 있던 기기(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를 벗자 실감났던 각종 장면은 사라지고 모니터만 덩그러니 있었다. 최근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누리꿈스퀘어에 있는 가상현실(VR) 시뮬레이터 개발업체 ‘이노시뮬레이션’에서 열차 운전 훈련용 시뮬레이터를 경험해봤다. 아직 개발 단계여서 게임용 조이스틱을 썼지만, 완성되면 의자 주변에 레버와 조작용 버튼이 달린다.

 VR가 ‘실용성’을 무기로 다시 명예회복에 나서고 있다. 그간 게임과 미디어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으로 주목받았던 VR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많았었다. 하지만 최근 교육훈련이나 가상실험 등 용도가 명확한 기업 간 거래(B2B) 시장에서 VR가 효용성을 인정받으면서 급성장하고 있다.

 이노시뮬레이션은 지게차 등 중장비 운전 훈련, 자동차 시뮬레이터, 잠수함 전투기 등 국방용 등 다양한 훈련용 VR를 개발하고 있다. 2000년 설립된 이 회사의 매출은 2015년 100억 원, 2016년 180억 원, 지난해 300억 원 등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올해는 600억 원이 목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VR·증강현실(AR) 산업 현황을 용도별로 구분해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한국가상증강현실산업협회와 함께 통계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VR가 주목받는 이유는 목적성이 뚜렷해 기술적 단점이 크게 부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봉현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VR산업진흥팀장은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가 무거워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있고 화면이 크게 움직일 때 멀미가 느껴지는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지만, 훈련용 VR는 그런 문제에서는 자유로운 편”이라고 설명했다.

 효율성도 좋다. 현재 항공기 조종석을 그대로 구현하는 시뮬레이터를 설치하려면 커다란 공간이 필요하고 사방을 디스플레이로 둘러야 해 제작비가 많이 든다. 큰 시뮬레이터를 움직이기 위한 에너지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민항기인 A380 시뮬레이터는 1대에 200억 원이 넘는다.

 반면 이를 VR로 대체하면 제작비도 크게 낮아지고 좁은 공간에서 여러 명이 동시에 훈련받을 수 있다. 또 훈련받는 사람들끼리 같은 가상공간 안에서 활동할 수 있다.

  ‘실용적’ VR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자율주행차의 주변 사물 인식 기능이 잘 작동하는지 VR를 이용해 사전 테스트를 해볼 수 있다. 손에 끼고 특정한 위치에서 어떤 행동을 하면 실제로 사물을 만진 것처럼 손에 자극을 주는 ‘가상현실 장갑’도 더 발달하면 레버나 버튼을 따로 만들지 않고 소프트웨어만으로 가상공간을 구현할 수 있다.

 조준희 이노시뮬레이션 대표는 “훈련용 VR는 훈련 대상 장비에 대한 지식이 중요해 단순 VR 기술만으로는 베끼기 힘들다”며 “중국도 VR 기술이 좋지만 실제 장비에 대한 지식에서 한국이 앞서는 만큼 경쟁력이 있다”고 밝혔다.


김성규 sungg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