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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맨’의 사회공헌

Posted 2018-01-12 08:48,   

Updated 2018-01-12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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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6년 영국 극작가 존 오즈번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가 런던의 연극무대에 올랐다. 희망을 상실한 20, 30대의 고뇌를 다룬 연극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부조리한 현실에 반감을 갖고 있던 젊은이들이 열광했다. 문학에서 특히 두드러졌고 이에 동조하는 앵그리 영 맨(Angry Young Man)이 탄생했다.

 ▷영국 미술작가 데이미언 허스트는 대학 시절 YBA(Young British Artist)를 결성하고 1991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제목은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 포름알데히드로 가득 찬 유리 진열장에 죽은 상어를 매달고 모터를 연결해 움직이게 한 작품이었다. 그는 미술계를 충격에 빠뜨리며 일약 YBA의 선두주자로 떠올랐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중 한 명이 됐다.

 ▷‘국립중앙박물관회 젊은 친구들(YFM·Young Friends for the Museum)’이 일본으로 유출됐던 고려불감(佛龕)을 구입해 9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YFM은 국립박물관을 후원하는 국립중앙박물관회 회원 3000여 명 가운데 50세 이하 젊은 기업인들의 모임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홍정욱 헤럴드 회장 등의 주도로 2008년 결성됐다. 남수정 썬앳푸드 대표, 박진원 네오플럭스 부회장, 박선정 GLMI 대표, 허용수 GS EPS 대표 등 9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2014년 고려 나전칠기를 환수할 때도 모금을 통해 비용의 일부를 댔다.

 ▷우리나라에 ‘영 맨’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1903년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기독교청년연합회)가 들어오면서. 당시 영 맨들은 근대의식 고취, 민권·농촌운동에 헌신했고 1905년엔 야구를 보급했다. 1970,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엔 민주화 운동에도 기여했다. 영 맨의 이미지가 시대에 따라 변해왔지만, 그래도 영 맨 하면 성난 얼굴이 떠오른다. 하지만 YFM은 영 맨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줬다. 젊은 경영인들의 사회 공헌이 문화적으로 원숙해졌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광표 kplee@donga.com